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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및 주절주절 /Essay

도후쿠 대지진 5년 _ 내가 겪은 3.11 지진

by 바야고양이 2016. 3. 7.

도후쿠 대지진 5년 _ 내가 겪은  3.11



2011년 3월11일본 관동대지진(동일본 대지진 혹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일어난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역사속에 기록 될 311지진의 그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3.11대지진으로 인해 사망한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앙숙인 한일 관계로 인해 ,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만으로도 "너 매국노 아니냐""일뽕취했네"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311지진 직후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을때도 "더 터저라! 일본망해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 일본에 가족들이 있으면 과연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서운함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난 반혐일)


쓰나미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으며 , 그냥 바닷가근처에 살아가는 평범한 노인층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사람들의 사망에 대해서 "잘 됬다. 더 죽었어야한다."라는 표현은 일본이 밉더라도 안했으면 한다. 

하나의 생명들에 대한 존엄성을 그렇게 어리석게 표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라도 저기 아프리카 사람이라도 생명은 소중하다...



어쨌든 그 전의 활기있고 즐거운 일본에서 2011년 우울한 느낌의 일본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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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11년 3월 11일의 그날.. 




그날은 3월의 봄날. 완전 봄이라기에는 살짝 추운 적당히 선선하고 맑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대학원 1년에서 2년으로 올라가는 ... 4월에 학기 시작을 앞두고 한국에 가지 않고 일본에 계속 있었다. 

한국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방학동안의 단체전 및 연구실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회사로 가서 , 제품확인 및 촬영을 하러 가기로 한날이었다.

그래서 오전 중에 연구실 사람들6명이 회사를 방문해서 2층의 회의실에서  제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촬영 및 회의가 끝난 후 슬슬 돌아갈까하는 길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나 화장실 갔다올께~" 라고 친구들에게 말을 하고 회의실을 나와보니 2층에 화장실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은 3층이라며 안내해준다. 그래서 난 3층에 올라갔고 여느 때처럼 유유히 화장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실 변기를 보는데 변기안의 물이 흔들흔들 차랑차랑 흔들린다. "흠...원래 이런건가.내가 어지러운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미친듯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앗! 지진왔다"

3.11지진이 오기전에도 지진이 자주 왔기에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른 레벨인것같다.

순간 지진이나면 화장실이 안전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혼자라는 공포감에 화장실을 뛰쳐나가게 된다.



화장실을 나오자 3층의 회사 사람들이 모여있고 , 몇몇은 책상밑에 머리를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서있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좌우로의 흔들림이었다. 

그 와중에 어떤 여자직원 몇명들은 울고 있었는데 , 내가 이 회사사람이 아니라 방문자인걸 안 어떤직원이 "이쪽으로 빨리 오라고 " 손짓하여 여러명에서 모여있는 기둥밑으로가서 몸을 감쌌다. 

회사의 집기들 및 상자들은 이미 바닥으로 내동댕기쳐저 있었고, 나는 이 지진이 멈추면 빨리 2층으로 가서 연구실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 이런지진 처음이네.." 

지진이 멈췄다고 생각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지진이 멈추자 모두 1층으로 대피하라고 누군가 지시를 하였고 , 사람들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니  연구실 사람들이 얼굴이 벌게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애들에게도 매우 드문 강진이라고 했고 그때까지는 우리는 그냥 이렇게 끝나는 지진인가보다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길에 상점가들이 있는데 그 중 몇몇의 유리창은 깨져있고 , 가게의 사람들은 모조리 길거리로 나와 길거리는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가게밖으로 나온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역으로 도착해서 집으로 가려고 보니 전철은 전 노선이 멈춰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뭐 지진났을 때는 일단 전철이 안전을 위해 자주 멈추니까.."라고 생각하였다.

4시..5시..가 넘어도 사람들만 늘어날 뿐 전철의 운행은 재개 될 기미가 안보이자 모두들 걸어서든 버스를 타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래서 나도 지하철 7정거장 정도를 걷고 또 걸어서 몇시간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미 핸드폰은 연결이 안되었다. 인터넷은 되는데 통신량이 많아서인지 전화도 되지 않고 먹통이었다. 

다행히 그 떄 당시에도 카카오톡이 있었는데 카카오톡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괜찮다고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집에 겨우 들어와서 문을 열고 방을 보니 내방의 상태는 가관이었다. 벽쪽에 붙어있는 침대는 방안 한가운데에 있었고, 천정의 전등은 비켜나갔고 책상위에 있던 웬만한 물건들은 다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윗층에 사는 아는 동생에게 카톡을 해보니 아주 먼곳에서부터 3시간째 걸어서 집에 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티비를 켰다. 

그 때부터였다. 심각하다고 느낀것이.....헬기로 보여지는 도후쿠 지방의 모습은 처참했다. 

바닷물이 회오리처럼 모여져서 쓰나미가 일어나 마을을 덥치고 있고 ,  곳곳에서는 불이나고 집으로 못간사람들은 길에서 밤을 새고... 

하아..놀란가슴을 잡고 자려고 했는데 그 후 며칠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여진이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의 우리동네(도쿄23구의 주택가)의 편의점이나 수퍼에 먹을것이 다 나가고 없다. 지진으로 인해 유통과정이 막혀 오려고 하는 것들이 못오는 것이다. 정말 음료수는 단 한병도 남아있지 않았고, 과자도 전멸 그나마 맛없어보이는 과자 몇개가 있어서 그거라도 잽싸게 사서 그냥 들어왔다.


그 때부터 스트레스의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후쿠시마에 원전이 하나씩 터지는 것이다. 

오늘 하나..다음날 하나 하나씩..

그래 .솔직히 지진은 한번 오면 끝인데,  원전 사고는 정말 큰 사고인 것이다. 

이미 윗쪽의 사람들은 2만명이 넘는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고, 하루종일 티비에서는 쓰나미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학교의 행사 등이 캔슬이 되고 정전이 되는 등 생활전체가 알 수 없는 우울의 느낌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당장 먹을게 없는데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방사능...

그때부터 부모님 및 친구들의 걱정들이 쏟아지고 나에게 욕을 하고 미쳤냐고 하고 ..

나는 거꾸로 이곳의 상황보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비행기표를 겨우 하나 겟을 해주어 (비행기티켓값이 천정부지)  그 상태로 하네다 공항에 가서 대기를 하다가 비행기를 타게된다. 공항에는 이미 외국사람들이 일본을 나가기 위해 모여있었고 , 계속되는 여진으로 공항도 패닉상태가 된 상태였다.


그렇게 끌려오듯 한국에 오자, 

부모님께서는 학업을 계속하는 것을 매우 반대했고, 나는 여기서 학교를 포기도 못하겠고, 한국에 있어도 암걸려죽고 병으로 죽는데 다 큰 내가 하는 일에는 제발 내 판단을 믿어달라고 말했다.

이런 트러블로 인해서 나는 학교를 휴학하기로 하고 , 한국에서 다시  1년동안 백수생활 + 계약직으로 있게 되었다.


일본대학은 휴학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특별한 이유 아니면 휴학을 허가 하지 않는다. 예를들면 한국학생들의 군휴학등은 허가된다) 휴학하는 것도 귀찮고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담당교수님께서는 이해를 해주셨고,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있다오는게 나을거라 하였다.


훗날 1년후 복학을 하고나서는 알 수 없는 분위기 (너 원전사고 때문에 휴학했다며 왜 다시 일본 왔어..?)때문에 마음고생도 조금 했으나 무시하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지진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그다지 겁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 가끔 누가 옆에서 다리를 떤다거나 흔들흔들하는 것에 예민해진 정도이다. 



▲ 2011년 3월 11일 오후 3시30경 내가 찍은 도쿄 우에노역의 모습 



일본이든 한국이든 지진왔을 때 팁 TIP (지진 대피 요령)


요새는 한국의 남쪽지방 등에도 지진이 관측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지진이 올 일은 적다고 생각하나, 대피법을 알고 있으면 나중에 일본여행 등에서 지진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화장실로 대피한다.

  화장실은 건물의 구조 중 다르 곳보다 튼튼하다. 왜냐하면 수도,배관 등 때문에 매우 튼튼하게 벽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장실 쪽의 기둥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고립되더라도 물을 마실 수 있다.


●책상밑으로 숨는다.

기본 중에 기본이다. 머리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막상 지진이 오면 사방팔방에서 물건들이 날아온다. 내 방 벽의 책 등도 무기가 되서 내리꽂으니 조심해야 한다. 


●방문 및 현관문을 열어놓는다.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이 좌우로 흔들리므로 현관문이나 방문의 "틀"도 움직인다.

닫힌 상태에서 문 틀이 틀어지면 지진이 끝난 후 혹은 지진으로 인해 불이났을시에 문이 안열려 탈출이 어려워진다. 


●가스 불 잠그기

그나마 3.11지진에 화재가 적었던 이유는 오후3시경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이 요리를 하던 시간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마 저녁밥을 하는 시간이었다면 가스폭발이나 화재로 인해 인명피해가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머리맡에 물건 놓지 말기

머리쪽에 책꽂이 혹은 액자 등은 금물이다. 94년 고배대지진은 새벽에 발생하였는데 ,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어서 저항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떄 특히 많았던 것이 집에 있는 가구가 사람을 덮쳐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는 곳엔 웬만하면 아무것도 놓지 않는 것이 좋다.